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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를 위한 경제, EoC란? 2016.06.29 16:40
글쓴이 : 벽난로 편집부 조회 : 2901

 

  

“익명의 너를 신뢰하라” - 위기에 처한 경제와 덕(德)

* 루이지노 브루니 지음

 

 

모두를 위한 경제, EoC - Economy of Communion

- 역사와 예언

* 끼아라 루빅 지음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 중에 하나는 “대안 경제”이다. 많은 이들이 경제 위기에 대해 말하고,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저성장과 양극화에 대해 우려하면서 더 이상 기존의 경제 시스템과 관행만으로는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시민 경제 등 ‘대안 경제 모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한국 사회경제에 적용시키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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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 같은 시점에 사회적 경제와 시민 경제학의 대가(大家)이며 이탈리아 로마 룸사(Lumsa) 국립가톨릭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루이지노 브루니(Luigino Bruni) 박사가 2016년 5월 방한한 데 이어 11월에 다시 방한한다. 

2016년 5월 20일 국회 도서관에서 <모두를 위한 새로운 경제 모델>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브루니 교수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그의 대표적인 저서 중의 하나인 『익명의 너를 신뢰하라』를 도서출판 <벽난로>에서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이탈리아 가톨릭 일간지인 《아베니레Avvenire》에 주제별로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 등 한계에 도달한 오늘의 자본주의 경제 상황에서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경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유럽의 경제사를 관통하는 “시장(市場)과 인간”이라는 주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오늘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핵심 원인 중의 하나는 “시장에서 이윤의 극대화만을 기계적으로 추구하고, 그 시장의 진정한 주인공인 인간 대(對) 인간의 관계는 경시한 결과”임을 예리하게 분석해 내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종교가 만들어낸 믿음은 더 이상 이 같은 인간관계 면에서의 신뢰와 당사자 개인의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경제적 관계에서 개성과 인격을 앗아가는 그 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경제 관계의 비인격화 과정은 그 이후 점차 자라나, 결국 우리 시대에 와서 최근의 경제 위기가 글자 그대로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경제 위기를 부른 원인의 상당 부분은, 신뢰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금융 시스템, 곧 경제적 재화를 창출해 주는 그 신뢰의 인간관계들과는 무관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했던 데에 있다.

 

그리하여 어떤 기업이 건실하나 어려움에 처해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자본주의 시스템을 따르는 은행이라면, 너무도 자주 그리고 점점 더, 신용장도, 사람들 간의 만남도 없이, 그저 컴퓨터 시스템의 알고리듬(algorithm)에서 나온 대출심사 결과 수치(數値)에 따라서만 응답하곤 하며, 이로써 비인간적인 응답 방식이 되고 만다.

 

우리 시대의 경제 위기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는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서로 만나야 하고, 사람들을 신뢰해야 하며 그들의 취약성까지도 신뢰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와 금융 거래에서 상대편의 얼굴을 대면하는 만남의 기회를 잃어버리면, 이 같은 거래는 비인간적인 지점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각자가 자기 영역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차원에서 피데스(fides: ‘믿음, 신뢰’를 의미하는 라틴어)를 다시 찾고 활성화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전략이나 그 어떤 정부도 진정 우리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 본문 중에

 

 

곧, 저자는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만이 시장경제를 새롭게 건설할 수 있고, 갈등과 대립, 분열로 점철된 오늘의 인류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유럽 경제사와 문화사,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등을 두루 섭렵하며, <시장경제에서의 인간관계>가 지니는 중요성을 경제사(經濟史) 및 철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준다. 한마디로 오늘의 경제위기의 근원과 그 해법은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인간관계의 핵심에는 특히 ‘신뢰’라는 것이 있다. 곧 ‘피데스fides-믿음’은 시장의 탄생에도 필수적인 요소였고, 모든 시장경제의 기본이 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을 왜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함으로써, 대규모 상업 거래의 바탕이 되었음을 분석한다.

 

 

“유럽에서 경제 행위가 시작되고 있던 여명기에, 곧 상인들이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 다니거나 유럽의 큰 강줄기를 따라 형성되었던 장(場)터에서 서로 만나곤 했을 당시에는, 아직 사법 체계와 재판 절차, 제재 규정이 아주 취약했고, 종종 전무(全無)하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의 복합적이고, 위험성이 따르고,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상거래에서는 진정 상대를 믿어야만 했다. 상대편도 양심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제대로 하리라, 또 제대로 납품하리라고 믿고 들어가는 신뢰야말로 ‘믿음’이 주는 중요한 보증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깊이 따지고 보면 그 상대편도 사실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상대편도 나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같은 신앙을 갖고 있고 그 신앙에 충실한 사람이기에, 나도 그를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능했다.

 

이처럼 피데스(fides: 믿음, 신뢰, 미더움)로 인해 거대한 유럽 대륙은 페리클레스 시대에 융성했던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같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혈족의 울타리를 넘어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필리아(philia)를 이루었다. 그 폴리스가 이제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훨씬 더 광범위해졌고, 폴리스에서 매우 넓게 확장된 시장은 부(富)를 배가해 주었고, 상업적, 사회문화적, 종교적 만남도 더욱더 늘어나도록 해 주었다. 믿음은 신뢰를 낳았고, 신뢰는 시장과 부(富)를 낳았다. 유럽은 바로 이 ‘피데스(fides)-신뢰-끈-믿는 것-신용’이 낳은 결실이다.” - 본문 중에

 

그러나 자본주의의 탄생과 더불어 이 같은 피데스(fides), 신뢰는 깨졌고, 유럽과 서구 경제는 대신 새로운 ‘피데스(fides)’를 만들어냈는데, 곧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피데스(fides), ‘신뢰’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첫 번째 피데스는 ‘인간관계’의 재화, 곧 관계재(關係財, relational goods)였는데 비해, 두 번째 피데스는 이윤추구의 기계적인 극대화 메커니즘에 대한, 때때로 맹목적인 ‘신뢰’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믿음’과 함께 ‘소망(희망)’, ‘사랑(아가페, 이타적 사랑)’이라는 복음삼덕(福音三德)이 시장경제의 작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분석해낸다. 또한 고대 서양 문명과 그리스도교에서 보편적으로 추구해온 ‘네 가지 중요한 덕목’, 곧 사추덕(四樞德, Cardinal virtues)’과 경제와의 관련성을 매우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조망한다. 이로써 시장에서도 상호성과 호혜성을 추구하는 건설적인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공동선(共同善)의 경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브루니 교수가 추구하는 이 같은 <대안 경제 모델>은 단순히 이론적인 도덕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운영 중인 EoC(Economy of Communion)기업들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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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경제, EoC는 정상적인 한 기업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윤을 창출한 후, 이 이윤을 회사를 위해 재투자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빈곤 지역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 또한 경제적인 나눔과 친교의 공동체가 태어나도록 하고, ‘주는 문화(The culture of giving)’, ‘사랑의 문화’가 확산되도록 하는 교육 사업에 이윤의 일부를 내어준다. 독지가들의 자선사업과는 달리, EoC 기업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단지 수혜자가 아니라, 동등한 주역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눔과 친교의 공동체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모두를 위한 경제, EoC는 가톨릭 영성 운동인 포콜라레운동(Focolare Movement)의 창설자인 이탈리아의 끼아라 루빅(Chiara Lubich) 여사가 1991년 출범시킨 새로운 경제 모델이다.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이 EoC에 관한 연구 활동과 그 실천과 확산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국제 EoC 위원회의 주요 멤버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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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를 위한 경제, EoC(Economy of Communion)

 

 

모두를 위한 경제, EoC는 복음적인 나눔과 공유의 정신에 따라 모든 경제활동의 패러다임과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포콜라레운동의 프로젝트이다. 이 운동의 창설자 끼아라 루빅은 1991년 브라질을 방문하면서 비행기에서 상파울루를 내려다보았을 때, 대도시의 화려한 고층빌딩들 주변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파벨라스(favelas) 빈민촌을 보게 된다. 부자들의 세계를 빙 둘러싼 수많은 가난한 이들의 삶의 현실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연상케 한다고 했던 어느 가톨릭 주교의 말을 떠올리면서 끼아라는 이 극심한 빈부 격차의 현실을 치유할 무언가를 시작해야 함을 강하게 느낀다.

 

 

이 같은 영감으로부터 끼아라는 1991년 5월 29일 상파울루 인근 마리아폴리 지넷따 소도시에서 새로운 기업운영 방식으로서 <공유경제 Economy of Communion>를 제안한다. 즉 기업을 설립해서 유능한 경영인에게 운영을 맡기고 이윤을 창출하되, 이윤의 일부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또 다른 일부는 이 정신을 삶으로 실천할 새 사람을 양성하는 데 사용하며, 나머지 일부는 기업의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제안은 브라질과 남미의 포콜라레 공동체에 즉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 운동의 소도시들 인근에 EoC 업체들의 산업 생산단지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다른 대륙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러 업체들이 생겨났다. EoC는 부자가 케이크의 한 조각을 떼어서 선심 쓰듯이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존엄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케이크를 함께 키워 나가고,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도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도록 하는 ‘주는 문화(The culture of giving)’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서 인간관계와 삶 자체의 복음적 변화를 추구한다.

 

 

직원 1,000명을 둔 이탈리아의 항공기 부품 회사인 움브라 쿠쉬네티(Umbra cuscinetti), 필리핀의 카바얀(Kabajan) 소액대출 은행 등 2015년 10월 현재 세계 각지의 EoC 사업은 총 811개에 달하며, 그중 유럽은 463개(이탈리아 263개), 남미 220개, 북미 26개, 아시아 18개, 아프리카 84개이다.

 

 

지난 25년간 EoC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도 발전을 거듭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관련 학술 세미나와 대회가 약 1,000회에 걸쳐 열렸고, 이미 500여 개의 학위 논문이 나왔다. 또한 이탈리아 로피아노의 소피아 대학원대학 등 EoC를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들도 늘고 있다.

 

 

 

 

 

이처럼 모두를 위한 경제, EoC의 기원과 사상적인 원천은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예언적인 비전(vision)과 세계관은 무엇에 바탕을 둔 것일까?

 

 

이번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의 책과 함께 나온, 또 다른 신간 『모두를 위한 경제, EoC - Economy of Communion - 역사와 예언』(* 끼아라 루빅 지음)은 이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모두를 위한 경제, EoC의 창시자인 끼아라 루빅은 이 책에서 자신이 어떻게 이 새로운 경제 모델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는지, 또 이후 어떻게 그 정신이 적용, 발전되어왔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한다.

 

 

끼아라 루빅의 EoC는 복음정신을 그 근원으로 하고 있다. 좀 더 좁혀서 말하면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곧 사회교리를 경제 분야에서 구체화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이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끼아라의 말이 이를 예시해 준다.

 

 

“모두를 위한 경제, EoC는 (…)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정신과 관행이 되살아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곧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32-34 참조)라는 점입니다. (…) 같은 집(포콜라레운동)에서 누구는 배가 고프고, 누구는 배가 부르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지와 주택을 내놓는 이도 있었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소중한 것, 예를 들어 집안의 보석을 내어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기업들의 운영 방향을 공유경제의 목적에 맞게 바꾸기 위한 여러 시스템을 고안해 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랑의 장관(壯觀)이었습니다. (…) EoC의 궁극적인 목적을 보다 잘 실현해 가고, 또 그 실현을 독려하기 위해, 우리는 EoC를 통해 도움을 받는 이 형제자매들에 대해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형제들은 누구일까요? 저는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 그들은 모든 것이 궁핍한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밤낮으로 짓누르는 근심을 마음에서 떨쳐 버릴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과 자녀들이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작은 집이 비록 오막살이일지라도 언젠가는 새 단장을 할 수 있고, 아이들은 계속 공부할 수 있으며, 비용 때문에 늘 치료를 미루기만 해온 병이 마침내 나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가장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네, 바로 이들이 우리의 가난한 형제들이며, 이들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들을 돕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상당히 명확한 유형의 예수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젠가는 우리에게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 내가 헐벗었을 때에 …, 내가 집이 없었을 때에, 또는 집이 무너졌을 때에’라고 거듭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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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학 서적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영성과 가톨릭 사회교리를 경제 분야에서 실현해내고자 하는 EoC 창시자의 기본 사상을 담은 영성 서적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이 책에는 모두를 위한 경제, EoC에 대한 끼아라 루빅의 대표적인 4개의 연설문 전문과 시적인 단상(斷想)들이 실려 있다.

 

 

도서출판 <벽난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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